세계일보

검색

[월드리포트] 美 천체물리학 권위자 서은숙 메릴랜드대 교수 인터뷰

입력 : 2012-02-19 17:26:09 수정 : 2012-02-19 17:26:09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미국에서 천체 물리학 분야의 권위자로 우뚝 선 서은숙(50) 메릴랜드대 물리학교수와 인터뷰 약속을 잡아놓고 인터넷을 이용해 그에 관한 기초 조사를 했다. 한국계로서는 최초로 1997년에 젊은 과학자에게 주는 최고의 영예인 미국 대통령상, 2006년 미 항공우주국(NASA) 그룹 업적상, 2008년 남극 서비스 메달 등 다채로운 수상 경력이 눈길을 끌었다. 미국 과학분야 최고 권위지 중 하나인 네이처에 연구논문이 게재됐고, 뉴욕타임스가 그의 연구업적을 다룬 기사를 싣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그가 어떤 사람이고, 미국 과학계에서 왜 주목받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메릴랜드대 우주과학관 3층에 있는 그의 연구실에 들어서자마자 다소 미안한 마음으로 무슨 연구를 하고 있느냐고 조심스럽게 첫 질문을 던졌다.

“영화 스타워즈에 나오는 우주선(宇宙船)이 아니라 외계에서 지구로 밀려들고 있는 우주선(于宙線)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문을 연 그의 답변을 들으며 몇 번이고 ‘잠깐만’을 외쳤다. 천체 물리학의 기초지식이 전혀 없는 기자가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광활한 우주세계가 빛의 속도로 펼쳐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주선(cosmic ray)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를 인터뷰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대학에서 천체물리학 과목을 수강하는 학생처럼 일단 서 교수의 길고 긴 설명을 메모해 가면서 열심히 들었다.

“우주는 어떻게 시작됐고, 어떻게 진화했으며, 앞으로 어디로 가고 있을까? 이 근원적이고 철학적인 질문의 답을 찾아 나섰어요. 철학과 물리학의 뿌리가 같지만 저는 과학을 통해 우주의 기본원리를 규명하는 연구에 매진했지요. 지구 밖 외계에서 지구로 무수한 미립자가 날아오고 있어요. 이것이 우주선입니다. 우주선이 대기 중에 존재하는 입자와 충돌해 쪼개지고 이때 우주선보다 에너지가 낮은 입자가 만들어져요. 이렇게 대기 중에서 무수한 입자가 만들어지는 것을 ‘에어 샤워’라고 합니다. 과학자들이 쪼개진 입자를 측정해서 처음에 들어온 원래 입자의 에너지를 간접적으로 측정할 수 있어요. 이처럼 에어 샤워를 관측하는 것을 ‘지상 관측 실험’이라고 합니다.”

여기까지 설명을 듣고 기자가 끼어들었다.

“교수님은 그러니까 우주선 입자 측정 분야의 전문가라는 얘기이지요.”

서 교수는 기자의 성급한 질문에 “좀 더 들어 보세요”라며 말을 이었다.

“에어 샤워 관측을 통한 간접적인 우주선 측정보다는 대기권 밖에서 우주선이 대기의 입자와 충돌하기 전에 직접 측정하면 더 좋겠지요. 그런데 면적이 수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 방대한 크기의 검출기를 우주공간에 띄우기는 어렵겠죠. 뭐든 뚫고 지나갈 정도의 높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우주선을 측정할 수 있는 검출기를 만들기는 어렵습니다. 제 연구 분야는 입자검출기를 우주공간에 설치해 우주선의 성분과 에너지를 직접 측정하는 ‘우주선 관측 실험’입니다.”

여기까지 설명을 듣고서야 서 교수가 무슨 연구를 하고 있는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서 교수가 아무리 순수과학 분야를 연구한다 해도 그것이 실질적으로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서 교수가 다시 한 번 환한 미소를 지었다.

“대기권 밖에 있는 고에너지 우주선은 인간이 만들 수 있는 에너지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거대한 별이 폭발하면서 은하 전체의 별을 합한 것보다 밝게 빛나는 초신성 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생각해 보세요. 이런 에너지가 나오는 ‘우주선 가속기’의 메커니즘을 규명하는 게 일차적인 목표입니다.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물질 중에서 우리 인간이 알아낸 것은 고작 4∼5% 정도에 불과해요. 현대 물리학으로 우주의 법칙을 4∼5%가량 설명할 수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암흑 물질’을 고에너지 우주선 연구를 통해 조금이나마 찾으려는 게 제 연구의 핵심입니다.”

메릴랜드대 서은숙 물리학교수가 1997년 11월 미국의 젊은 과학자에게 주는 최고의 영예인 대통령상을 받은 뒤 기념촬영을 했다.
서 교수는 2004년부터 나사와 공동으로 남극에서 검출기를 띄워 우주선을 측정하는 크림(CREAM) 프로젝트의 총괄 책임자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미국, 한국, 이탈리아, 프랑스, 멕시코 등 5개국 연구원 100여명을 이끌고 이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매년 남극 대륙에서 일정 기간을 보내고 있다.

그의 연구 결과가 네이처에 게재됐고, 뉴욕타임스는 과학면에 관련 기사를 다뤘다. 서 교수는 이 같은 업적으로 미국에서 고에너지 우주선 연구분야의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서 교수는 2014년에는 우주정거장에 검출기를 설치해 역사상 가장 높은 우주선 에너지를 측정함으로써 우주의 신비를 벗기는 거대한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기자가 화제를 바꿨다. 서 교수는 미국 대학에 종신 교수로 몸을 담고 있기에 한국과 미국 과학교육과 연구의 차이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 대학에서는 아직까지 기초과학 전공자가 줄어들고 있지는 않아요. 예를 들어 물리학을 전공하면 졸업 후에 금융, 엔지니어링, 컴퓨터 등 모든 분야에서 물리학의 원리를 응용해 두각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미국 대학 당국은 생물학 전공자에게도 물리학을 가르치기 위한 교과 과정을 짜고, 관련 교재를 개발하며 기초과학 교육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어요.”

서 교수는 이어 대학생이 자유롭게 전공을 바꿀 수 있는 제도가 마련돼 있고, 여러 전공 분야에 대한 공부를 시도해 봄으로써 자연스럽게 자신에 맞는 직업을 선택할 수 있도록 미국 대학교육이 이뤄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특정 전공에 필요한 필수과목을 최소한으로 줄여 이중 전공을 쉽게 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전공 학부 간 상호 협력체제를 가동해 학생에게 선택의 폭을 최대한 넓혀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 교수는 “대학 재학생 때 실험실에서 학술연구 경험을 쌓도록 기회를 주고 있는 것도 미국 대학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학생이 반드시 연구활동에 참여하도록 함으로써 해당 분야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을 한 뒤에 자신의 진로를 결정하도록 기회를 주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미국에는 2만명 이상의 한국계 과학자들이 활약하고 있다. 미국 대학에서 이공계 분야 박사학위 취득자의 절반가량이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미국에 잔류하고 있다. 서 교수는 그 배경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미국은 흔히 기회의 나라라고 합니다. 국가 전체적으로 볼 때에도 기회의 나라이고, 과학분야에서도 기회의 나라입니다. 한국과 미국을 비교할 때 사회 시스템과 연구환경 측면에서 미국이 더 자유롭고 기회를 많이 주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한국의 이공계 박사 취득자들이 미국을 선택하고 있어요. 미국에서는 공정하게 경쟁을 해서 자신이 구상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기가 한국보다 쉽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 정부는 최근 해외에 거주하는 우수 과학자 영입에 적극 발벗고 나섰다. 교육과학부는 2017년까지 세계 최고 석학 및 과학자 500명을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에 유치하는 ‘브레인 리턴 500’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김창경 교육과학부 제2차관은 이달 초 미국 시카고와 보스턴을 돌며 재미 우수 과학자 영입작업을 벌였고, 서 교수와 보스턴에서 만났다. 서 교수는 이 프로젝트에 대해 이렇게 조언했다.

“인도와 중국이 미국에서 활동하는 자국 출신의 과학자를 안식년에 데려가 실질적인 경험을 하도록 배려하고 있어요. 그런 뒤에 이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지요. 해외에 있는 과학자를 한국으로 데려가려면 한국에서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어야 합니다. 과학자와 교수가 잡일에 신경쓰지 않을 수 있는 환경 조성이 중요합니다. 해외에서 갓 박사학위를 딴 사람에게는 한국에서 특정분야를 주도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해요. 한국이 독립적인 연구기회를 준다면 젊은 과학자들에게 호소력이 생길 것입니다. 미국에서 이미 정착한 과학자에게는 현재 미국에서 하고 있는 연구를 한국에서도 계속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줘야 해요.”

인터뷰를 마치면서 서 교수처럼 미국 과학계를 선도하는 스타 과학자가 한국으로 돌아오기는 쉽지 않을 것이지만 한국과의 공동연구를 통해 한·미 양국의 과학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이 활짝 열렸으면 하는 바람이 절로 들었다.

워싱턴=국기연 특파원  kuk@segye.com

■서은숙 교수 프로필 

△고려대 물리학과 졸 △고려대 물리학 석사 △미 루이지애나 주립대 물리학 박사 △메릴랜드대 연구원 △메릴랜드대 물리학 종신교수 △우주선 연구 CREAM 프로젝트 팀장 △재미 한인물리학자협회 회장 △미 항공우주국 (NASA) 우주선평가그룹 멤버 △미국 대통령상 등 수상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아일릿 이로하 '매력적인 미소'
  • 아일릿 민주 '귀여운 토끼상'
  • 임수향 '시크한 매력'